부르심에 합당한 인생이 되자 생명의 양식 설교원고

설교듣기


설교내려받기


본문: 사도행전9:1-22

제목: 부르심에 합당한 인생이 되자

                                                                      10. 7. 4 향기나무교회 주일오전 예배

                                                                                                     서 병 안 목사


1. 오늘 본문은 사울의 회심에 대한 이야기다.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이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모세라면 신약의 대표적인 인물은 이방인

    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이다. 바울은 신약성경 27권의 책 중 절

    반이 넘는 14권의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2. 사울이라는 이름은 바울이 거듭나기 전에 사용하던 이름이다.

    사울은 유대인들이 스데반 집사를 돌로 쳐서 죽일 때 현장에 있었으며 그 일의 증인으로

    선택된 사람이다. 그는 바리새파 유대인으로 당시 최고의 선생으로 알려진 가말리엘의
    제자로 성경에 능통하고 유대교에 남다른 열심이 있었다.


3. 하지만 유대교에 대한 지나친 열심은 사울이 예수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엉뚱한 결과를 가져오게 한다. 1절을 보면 사울이 얼마나 예수님의 제자들을 강하게 핍

    박했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들을 완전히 없애기 위해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고 다메섹까지 쫓아간다.


4. 그러나 그는 다메섹으로 가까운 곳에서 빛으로 나타나신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예수님을 만난 후 사울의 인생은 복음의 박해자에서 복음의 증인으로 완전히 바뀌게

    된다. 오늘은 사도 바울의 회심과정을 통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영적 원리들을 살펴보

    며 복을 나눈다.


Ⅰ. 거듭남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다.

1. 오늘 본문은 거듭남의 본질은 열심 있는 종교생활이 아닌 예수님과의 만남에서 오는

    것임을 알게 한다. 사울은 종교적으로는 완벽했고 열심히 움직였던 사람이다.

    [빌립보서3:5-6]“내가 팔 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율

    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2. 하지만 그의 완벽한 종교생활도, 율법에 대한 열심도 그의 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 있는 종교적인 신념도 그를 거듭나게 하지 못했다.

    사울이 언제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게 되었나? 다메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빛으로 나

    타나신 예수님을 만났을 때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것이다.


3.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증거로 종교적인 확신을 말한다. 특별한 체험이나 기적

    과 같은 것들을 추구한다. 어떤 체험이나 기적도 그 자체가 거듭남의 본질은 아니다.

    사울과 함께 길을 가던 사람들의 경우를 보라. 그들은 사울과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온

    해보다도 더 밝은 빛을 보았고 소리를 듣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도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남이 없었다.


4. 그들은 빛을 보고 소리를 들었지만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예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이 없었다는 뜻이다. 결국 거듭남의 본질은 기적이나 환

    상 같은 영적 체험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에 있음을 알 수 있다.


5. 제가 구원상담 할 때 왜 죄에 대한 회개와 예수님을 영접하는 일을 그렇게 강조하는지

    아는가? 그냥 건성으로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로는 예수님과 인격적으로 만

    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울은 후에 사도로서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 앞에 대한 회개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 대하여 분명하게 전한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해서 말씀드린다. 구원, 즉 거듭남의 본질은 예수님과의 만남에 있다.


6. 사울의 경우를 보면 아무리 사악하고 못된 죄를 지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구원의 기회

    가 주어짐을 알 수 있다. 그는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직전까지도 예수님의 제자들을 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달려가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사울에게도 구원의 기회가 주어진 것은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7. 그러니까 아무리 죄가 많아 보이는 사람에게도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한다.

    “저 사람은 하도 악하고 죄가 많아서 구원받을 자격도 없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없다. 아무리 악하고 불의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를 위해서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셨음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

    을 부르러 오셨기 때문이다.


8. [에스겔18:23]“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어찌 악인의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

   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서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


Ⅱ. 하나님께서는 준비된 사람을 통해 일하신다.

1. 예수님께서는 사울에게 다메섹 성으로 들어갈 것을 명령하신다.

    그 성에 가면 예수님께서 미리 준비 하신 사람을 통해 사울이 행할 것을 가르쳐 줄 것

    이라고 말씀하신다. 사울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다메섹 성으로 들어가 사흘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그 사람을 기다린다.


2. 한편 주님께서는 그곳에 사는 아나니아라는 제자에게 나타나서 직가라는 거리에 있는

    유다의 집에 가면 사울이라는 사람 있으니 그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라고 명령하

    신다. 아나니아는 주님께 사울이 예루살렘 교회성도들을 핍박했으며 여기 온 것도 그

    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온 것이라고 말씀드린다.


3. 그러자 주님께서는 사울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특별히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라고 말

    씀하시면서 아나니아를 사울에게로 보내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다.[15-16절]읽을 것.


4.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한 가지 사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세우시고, 세우신 사

    람을 통해 사역을 이루어 가신다는 사실이다. 물론 예수님께서 직접 사울의 눈을 뜨게

    하시고 그에게 직접 행할 일을 가르쳐 주실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기를 원하셨다.


5. 그럼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을 사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까?

    첫째 아나니아는 주님의 제자였다. 제자라 함은 주님의 가르침과 명령에 전심으로 순

    종하고 따르는 사람을 말한다. 주님의 명령으로 사울을 찾아간 아나니아는 사울에게

    형제라는 호칭을 사용한다.[17절]


6.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형제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과 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울은 교회를 핍박했고 많은 성도들을 잡아 가둔 사람

    이었다. 그가 다메섹에 온 것도 자기들을 잡아 가두기 위해 온 것을 알고 있는 그가

    사울에게 형제라고 부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그는 주님의 명령에 기꺼이

    순종했고 그에게 안수하여 그의 눈을 뜨게 한다. 형제 사울이라는 말은 듣는 사울에게

    얼마나 큰 격려가 되는 말인가?


7. 사도행전 22:12절은 아나니아를 율법을 따라 경건하게 사는 사람으로 거기 사는 모든

    유대인들에게 칭찬을 듣는 사람으로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삶이 깨끗하고 성실한

    사람,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 듣는 삶들을 사용해서 일을 행하신다.[집사의 자격 참조]

    특별히 아나니아의 경건함은 유대인들의 눈으로 보아도 흠없고 온전한 경건함이었다.


8. 만약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삶이 경건하지 못하거나 인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기가 상당히 어려울 것이다. 여기저기서 손가락질 받고 사람들과

    의 관계에서 문제가 생겨 삐걱거리다 보면 일을 진행해 나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9.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의 또 다른 특징은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이다.

    여기서 들을 귀가 있다는 말은 마음을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된 사람을

    말한다. 10절을 보라. 하나님께서 환상 중에 아나니아를 부르신다. “아나니아야!”

    주님께서 부르시자 아나니아는 즉시 대답한다. “네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10.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신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

    이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겸손

    하지 못한 사람도 들을 귀가 없는 사람이다.


11.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인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상 말씀에 순종

    할 수 밖에 없게 된다. 하나님의 일에 귀하게 쓰임 받는 향기나무 교회 성도님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들을 귀가 있는 향기나무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바란다.


Ⅲ.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1. 예수님께서는 사울에 대하여 이방인과 임금,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택하신 그릇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전의 사울의 모습은 어떤가?

    그는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다. 그것도 아주 심하게....


2.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때, 사울은 도저히 하나님의 편에서 일할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미 사울을 통해 유대인들과 임금들, 그리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할 계획을 세우신 것이다. 사울이 가지고 있는 좋은 사회적 자질들을 통해 유대인들

    과 임금들, 그리고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적임자로 사울을 선택하신 것이다


3. 사울은 아나니아의 안수로 눈을 보게 되고 성령 충만함을 입은 후 즉시로 각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전파했다. 사울의 전하는 복음을 듣고 듣

    는 모든 사람들은 놀랐다고 성경은 번역했는데, 원래 문자의 뜻은 ‘제정신이 아니다’

    ‘이성을 잃었다’라는 강한 의미의 단어다. 생각해보라. 이제껏 자기들 편에서 그리스도

    인들을 핍박했던 사울이 갑자기 그들을 옹호하니 유대인들이 당황할 만한 것이다.


4. 이에 사울은 더 힘을 얻고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명함으로 유대인들을 굴복시킨다.

    이후 사울은 임금들과 로마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순교했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심

    의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된 삶을 산 것이다.


5. 하나님의 부르심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사울을 도와준 아나니아도 하나님의 선하신 계획 가운데 쓰임을 받은 사람이다.

    아나니아의 사명은 사울에게 안수하여 그의 눈을 뜨게 하고 그에게 침례를 베푸는 일

    이었다. 아나니아의 경우도 자기를 부르신 하나님의 목적을 100% 달성한 케이스다.


6.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세상에서 불러내실 때도 분명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우리를 부르실 때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위해서만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영혼을 구령하는 일이든지, 교회를 섬기는 일이든지, 목사들을 돕는 일이든지 무언가

    주어진 사명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사명을 발견하고 그 사명대로 살아가

    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7. 물론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귀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의 과정을 진정 가치 있는 일에 드리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우리들

    을 부르실 때 부여하신 목적이나 사명을 잘 감당해야한다.


8. 같은 모양, 같은 크기, 같은 색깔을 가진 그릇이라 할지라도 쓰이는 용도에 따라 그 가

    치는 또 다르게 변화될 것이다. 똑같은 바이올린이라도 누가 연주하는가에 따라 그 가

    치가 결정된다. 바이올린이 제 손에 들려있을 때와 파가니니라는 위대한 연주가의 손

    에 들려있을 때, 그 바이올린의 가치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여러분의 인생을 누구의

    손에 맡기겠는가? 그 귀한 인생을 무엇을 위해 투자하겠는가?


9. 성경은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고 말씀하고 있다.

    [롬11: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우리를 부르신 하나님, 우리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이루어감으

    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인생의 가치를 높이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기를 소원한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